토토 바카라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힘든 사회에서, 오늘을 힘껏 살아낸 것만으로 스스로 대견하지 않은가? 꼭 행복까지는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5』, 2024

대학생은 누구보다 ‘불안’에 취약한 집단이다. 갓 입학한 신입생, 졸업을 앞둔 막학기생가릴 것 없이 누구나 각가지의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잘 버텨내는 게 대견할 뿐이다.

김민지(사회학과 3) 씨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불안을 항상 데리고 산다. 그는 ‘내 자소서가 남들에 비해 빈약한 건 아닌지’를 시작으로 ‘하루를 알차게 살아가지 못한 건 아닌지’ 다양한 불안에 휩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고말한다.

이제 막 신입생 딱지를 뗀 홍석현(경제금융학부 2) 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남은 대학 생활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앞으로 맞게 될 새로운 환경에선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하다.

토토 바카라란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로,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무난한 일상에 가치를 두는 태도를 말한다.

『트렌트 코리아 2025』는 한국 사회의 행복 담론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행복해야 한다’가 아닌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인 ‘아주 보통의 하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렌트 코리아 2018』에 등장한 키워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행복이란 거창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했다. '원대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을 좇기보다는 일상 속 손에 잡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많은 이들이 행복을 찾아 나서게 했다.

그러나 이 역시‘행복 강박’이라는 부작용을 불러일으켰고, SNS 등을 통한 행복 과시로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현대인들은그저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다. 실제로 ‘무탈·평범·보통’의 온라인 언급량이 최근 2년간 증가세를 보인다.

2025년을‘초불확실성의 시대’라 칭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불안정한 지금, 대학생들은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가 어렵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불안·열등감·절망감과 같은 부정의 감정들을 떨쳐내기에 ‘토토 바카라’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대학생들이 말하는 '토토 바카라'

김 씨는 '토토 바카라'가 요즘 본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많이 닮아있다고 말한다. 그는대학교 1,2학년 때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될 거야‘ 혹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좋아해서 감투를 쓰는 일이라면 뭐든 지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세상을 바꿔보자'는 목표는 '그냥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자'로 바뀌어 갔다. 성공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다가도,달성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동시에 떠올리면 막막하기만 하다.

졸업 요건, 언론고시 준비, 학점, 공모전 및 대외 활동, 다음 학기에 예정된 교환학생, 연애.최근 그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발 내 심기를 건드는 일 없이 평안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물론 이 역시 쉽지 않다.

홍 씨는 '토토 바카라'가우리 사회 전반에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는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갉아 먹는 현대 사회에서 토토 바카라는 열등감 대신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좋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에게행복을 채워주는 소소한 일상이다. 홍 씨는 "사실 행복이란 만연한 것인 만큼 내 일상, 내 내부를 돌아보며 행복을 찾는 것은중요한 일이다"고 말했다.

어떻게 ‘토토 바카라’를 추구할 수 있을까

토토 바카라, 말 그대로 아주 보통의 하루다. 오늘 하루 따스한 햇살을 맞을 수 있음에, 맛있는 한 끼를 할 수 있음에, 안전하게 귀가했음에 감사하다. 일상은 감사함의 연속이고, 그 감사함은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살아갔다는 행복을 쥐여준다.

김 씨는 자신만의 ‘토토 바카라’ 4가지를 소개했다.

첫 번째,노을 지는 시간대. 일몰 한 시간 전에 집에서 나와 노을 지는 것을 본다. 그는 "해가 지는 것을 보면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두 번째, 혼카·혼영. 그는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본인 맘대로할 수 있는 '혼놀 시간'을 즐긴다.

세 번째, 버스타기. 이어폰을 끼고 창밖을 보는 것은 그에게크나큰힐링이다. 마지막은 비밀 블로그 작성하기. 그는 "이전에는내 이야기를 자랑하며 만족감을 얻었지만, 이젠혼자만의 공간에 글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에 마음이 풍족해진다"고 말했다.

홍 씨는 최근 3월 새터 공연 준비를 위해 밴드부 동기들과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합주는 일주일 중 하루 남짓 거르고 매일 진행한다. 허기가 질 때면 다같이 가성비 식사를 즐긴다.합주 연습과 식사,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오늘 하루의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는 "먼 훗날 돌아봤을 때 이 소소한 하루하루가 행복한 기억으로 그려질 것이다"며"아주 특별하고도,아주 보통의 하루들이다"고 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 청춘시대, 아주 보통의 하루에서 행복을 찾으며 보다 밝은 청춘의 한 페이지를 그리는 토토 바카라인이 되길 바란다.